미국 사람들 대부분은 페미니즘, 혹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인 ‘여성해방’이란 여성과 남성을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만들려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주류 운동권과 대중매체가 넓게 퍼뜨린 이런 정의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백인우월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계급 구조 안에 있는 남자들은 평등하지 않은데, 여성들은 어떤 남자와 평등해지기를 원하는 건가? 여성들은 평등의 의미를 모두 똑같은 시각으로 파악하고 있는 건가? 여성해방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정의한다는 것은, 성차별주의와 더불어 한 개인이 어느 정도로 차별과 억압과 착취를 당하게 될지 결정하는 요소인 인종과 계급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갖는 부르주아 백인 여성들은 이런 단순한 정의가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주기 때문에 만족한다. 그들은 수사학적으로는 자신들을 억압받는 여성들과 사회적으로 동일한 범주에 두면서도, 인종과 계급특권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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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제를 유지하려면 가정에서 위계적 통제와 강압적 권위를 지탱하는 가치들을 가족구성원들에게 주입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페미니즘 운동이 가정생활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데 확실한 도움이 된다. 사회학자 베리 손은 에세이 모음집인 ‘가족을 다시 생각하기: 페미니즘적 질문 몇 가지’ 에서 가족생활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은 신우파 집단의 정치운동에 이용됐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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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적 억압을 종식하려는 투쟁이 위와 같은 지배의 문화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데 중점을 둔다면 다른 형태의 해방투쟁들도 역시 강화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성차별을 뿌리 뽑으려고 싸우면서도 인종차별이나 계급차별을 종식하려는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차별을 뿌리 뽑으려 했던 노력을 훼손한다. 인종차별이나 계급차별을 뿌리 뽑으려고 투쟁하면서도 성차별적 억압을 지지한다면 모든 형태의 집단 억압의 문화적 기반을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그들이 성공적으로 개혁을 주도한다고 해도 그들의 노력은 혁명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전반적인 억압에 대한 그들의 이중적인 관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모순이다. 만약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이뤄내는 급진적인 과업을 매일같이 훼손시킬 것이다.